달콤한이야기/보석글상자

[펌글]삼십대에 눈뜨는 공식 -www.jubumonitor.com에서

토모케이 2005. 3. 22.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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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냥~ 가슴에 파~악~ 꽂힌다
특히 30대 여성분 잘 읽어 보시와요
(주의:낑낑거리며 책보구 타이핑한거라서 오타가 있을수 있음!!(^.~)



삼십대에 눈뜨는 인생공식



올해 내 나이는 마흔여섯이다. 이제는 삼십보다
오십이 가까운 나이가 된 것이다.



지금도 삼십대의 후배들을 보면마음이야 나도삼십대건만

그들의 고민이 다소 작아보이는 것을 보면 그시절을 넘긴
확실히 넘은 모양이다.



내가 강연장이나 인터넷에서 만난 삼십대들 의 공통적인

고민은 가정과 자아 사이의 갈등이라고 요약된다.



엄마처럼 가정과 자식에만 묻혀 살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당면해 있는 현실은 자식과 살림살이, 가족관계이다.



완벽하게까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인정은 받고 싶다.그래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고

애쓴다.



애들한테도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유기농을 찾아

먹이고 외출시간은 밥때를 피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가족생활을 고려해도 애써 포기한다.



하지만 수시로 고개를 드는 물음표는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이것이 진정 내가 꿈꿨던 나의결혼과 인생이던가?'

'이러다 나도 엄마세대처럼 늙어가는 것은 아닐까?'



세차게 머리를 흔들어도 의문과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현실을 좇아 시간을 보내지만 그 사이 물음표는 가슴속에서

더욱 커져간다.


요컨대 삼십대 여성들은 자아실현이라는 이상과 주부역할
이라는 현시,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안간힘 쓴는 세대인
것이다.



특히 요즘은 흔한 말로 '잘나가는 미즈'들이 대중매체에

넘쳐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들은 어쩜 그렇게 둘 다를 완벽하게 해내고 사는지.

그렇지 못한 여성 삼십대들 은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시달리기 쉽게 된다.



열등감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되고

피해의식은 좋은 환경을 타고 나지 못했다는,주로

이런 처치에 놓여 있다보니 하루는 기쁘고 하루는 우울하다.



사소한 일에 기뻐하고 별거 아닌 일에 슬퍼진다.

일종의 정서적 불안 현상을 겪는 것이다



돌아보면 나도 삼십대에는 똑같은 현상을 겪었던 것 같다.



어떤 때는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을수 있을 것처럼 흥분했다가 한순간에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빠져버리곤 했다.



어떻게 그 시절을 넘겼을까 생가해보면 갑자기 억울한 마음이 든다. 정서적으로 너무 많은 소모를 하고 보냈다는 적자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삼십대는 자유와 독립을 향하는 인생의 진정한 출발점

삼십대! 얼마나 빛나는 시절인가..



흔히 이십대를 꽃다운 나이라고 하지만 그건 외모에 치중한

남성적 시각에서 나온 말이고 삼십대야말로 인생의 절정기라고 할수 있다.



몸도 마음도 다 젉고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때이다.

그런 시기를 정서불안에 시디리면 서 좋은줄도 모르고

허송하나다는 것은 얼마나 아깝고 아픈일인지.



그렇다면 삼십대를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

아니 내가 요만큼의 깨달음을 가지고 다시 삼십대가
된다면 어떻게 보낼까.



진정한 자유와 독립을 향해 차분히 준비하는 시간으로

삼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십대에도 자유와 독립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자유와 독립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귀가시간 걱정없이 시간을 보내고 부모를 설득하지

않고도 가고 싶은 곳을 훌쩍 떠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자유요, 독립이었을 뿐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때의 결혼은 부모와 커다란 마찰없이

세상의 이목을 신경쓰지 않으면서 독립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쉽게 택한것이 었다.



그러나 막상 결혼은 역할과 책임감의 공간이었다.


독립은 어떤 역할과 책임을 혼자 져야 한다는 의미이며 자유는
오히려 위축되어 부모의 간섭 속에 살던 시절이 그리울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삼십대의 이러한 현주소는 자유와 독립에 있어서 희망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부모에서 남편으로 인생의 동반자가 바뀐다고 해서 자유와 독립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남편과 자식을 사랑하고 살림살이로 바빠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자기속에서 꿈틀댄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십대는 진정한 자유와 독립을 향해 나가는
인생의 전정한 출발점이 된다.



주어진 현실에 불만족하기보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상황이 달라질 거라는 다소 긴 안목으로 서서히 인생의 차선변경에 들어가야 한다.



당장은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어린 아리들이 걸림돌이 되지만 아이들은 시간과 더불어 성장한다. 아이들이 크면 그때부터 하리라 미루지 말고 성장과 더불어 조금씩 이루고 싶어 하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분배해야 한다.



이것이 인생의 차선변경이다.


일차선을 달리면서 우회전을 못할까봐 초조해 하기 보다
여유있게 한 차선씩 변경해 들어간다면 교차시점에서

무리없이 우회전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다시 삼십대갸 된다면 나는 진정 자신이 살고 싶은 인생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시간으로 삼을 것이다.



남들이 사는모습과 자신을 비교하기 보다 내안에는

어떤 욕구와 잠재력이 들어있는지 자신으 들여다보는

내면의 시간을 가질것이다.



아무래도 가정에 매이고 집에 묶이게 되는 삼십대의 상황은

내면을 들여다보기에 아주 좋은 기회임에 틀림없다.



자산의 내면에서 찾아낸 욕구와 희망을 나침반으로

삼아 더디지만 한발씩 한 차선씩 그것을 향해 움직여 간다면

정서불안 현상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목표가 있는 삶은, 작지만 실천하는 삶은 정신과 발결음

모두가 또력 할 뿐이다.


나는 삼십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애석하지 않다 지금 사십대를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므로, 사람의 나이는 주민등록증로 가는게 아니라 정신문화에 있음을 믿으므로, 그리고 이러한 인생공식은 삼십대에 처음 눈뜬다는 것일뿐, 전 인생을 통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여성작가 오한숙희가 들려주는 에세이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