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이야기/백스테이지(100%STAGE)

무능한 청춘을 위로한 아름다운 퀴즈, 뮤지컬 <퀴즈쇼>

토모케이 2009. 12. 9. 02:32
New musical 퀴즈쇼

 

12월 6일 뮤지컬 <퀴즈쇼> 첫 공연을 보러 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무대에 올려질까?

 

기대감보다도 불안감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영화 <달콤살벌한연인>을 뮤지컬화한 <마이스케어리 걸>에서 예전과 다른 각색을 보여주는 창작뮤지컬의 힘을 확인한 바 있지만, 이번에는 문제가 다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제1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김영하의 2007년작인 소설 <퀴즈쇼>를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선한 시각과 문체로 많은 독자층을 가진 그의 작품이고, 가독률이 뛰어난 작품이지만, 보여지는 작품으로써 그의 작품은 난해하고 어렵다. 게다가 퀴즈쇼의 분위기는 우리가 흔히 뮤지컬에서 기대하는 화려하고 멋진 그것이 아니다.

 

그러나 공연 10분만에 이러한 불안감은 사라지고 극의 구성에 매료되게 된다.

민수가 다소 우유부단할 정도로 자신감이 결여된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사생아)부분이나, 외할머니 최여사에 대한 설명이 과감히 생략되어 초반 이야기의 중심만을 뽑아낸 느낌이다. 외조모의 죽음과 남겨진 빚, 가진 집마저 빼앗긴 민수에게 남은 돈은 겨우 40여만원. 여유롭게 살던 민수는 고시방 505호로 내몰리게 된다.

 

고시방의 무대장치는 개인적으로 예전 이윤택 연출의 <파우스트>나 국립발레단 공연의 <노틀담의 꼽추> 무대를 떠올리게 했다. 효과적인 화면의 연출이 가능하고, 특히나 암울하고 정형적인 금속성의 네모칸들이 극에 강한 인상을 불어넣는다.

 

극에서 민수는 고시원에 들어온 후 기업에 이력서를 내고 취업을 하고자 하고, 이때쯤 인터넷 퀴즈방 또한 접하게 된다. 다양한 인생경로에서 긍정적인 선택이 가능한 사회였다면 민수의 선택은, 청춘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배경도 재능>이라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사회, 그 앞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청춘. 기어올라가다가 떨어지고 마는 사다리...

 

마침 민수에게 인터넷 퀴즈방을 통해 다가오는 유혹. 묘한(?) 퀴즈회사로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은 것. 이후 퀴즈쇼 2부는 화려한 퀴즈쇼와 또 하나의 악마적 부조리를 감춘 퀴즈회사의 면면들이 흥미롭게 펼쳐져 눈을 뗄 수가 없다.   

 

급훈훈하게 끝을 맺은 결말이 다소 부담(?)스럽긴 했지만, 전체적 구성에 있어서는 근래 내가 본 중에 최고가 아니었나 싶다. 창작뮤지컬에다가 초연인 점을 감안할 때 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소설 속 캐릭터들에 더욱 개성이 실린 것도 만족스럽고, 과감히 사랑이야기를 줄이고 뮤지컬 전체 주제에 부합하도록 이야기를 집중시킨 것도 훌륭했다. 퀴즈를 함께 푸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소설 속의 퀴즈가 아니라 시대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보강되었으면 한다.

 

퀴즈쇼 전체적인 분위기가 답답하고 막막한 88만원 세대의 부조리를 대표한다. 그러나 하얀 막의 지나친 사용과 악마적 캐릭터들이 좀더 강화되지 못한 영향으로 극 전체가 뿌옇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효과적인 음악과 함께 좀더 격정적인 악역이 보여짐으로써 유혹에 빠진 민수와 유혹에 빠뜨리려는 퀴즈회사와의 대비가 극명했다면 극에 대한 몰입이나 호응이 더 컸으리란 아쉬움도 덧붙여 본다.

 

추가적으로 한 마디 더 해보자면, 이상하게도 이 <퀴즈쇼>는 음악보다도 무대디자인이 더 기억에 남는다. 음악 또한 달달한 느낌의 민수-지원의 곡부터 강한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춘성의 곡까지 다양하고 좋았다. 하지만, 디지털화면을 효과적으로 배치하여 사실적으로 연출된 홍대거리랄지, 사각의 고지위에 얹어진 사다리의 구도로 펼쳐진 대기업 입사현장이랄지 장면장면 마다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이고, 마음에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무대장치가 옮겨지는 속도만 조금 빨라진다면 이번 뮤지컬의 가장 큰 수훈감이 아닐가 싶다.

 

첫 공연인 만큼, 커튼콜이 없어 아쉬웠다. 마음껏 박수를 쳐 주었지만,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과거 연극은 단순한 유희에서 시대 정신을 담기 시작했고, 그로써 더 큰 시대의 공감을 얻었다. 이제 이 땅의 뮤지컬도 단순히 외국에서 들여온 재미 위주의 뮤지컬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시대공감이라는 주제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성장했고, 보는 우리 또한 성장해온 것이 아닌가 싶어 감격스럽다. 매끈한 목소리로 열연을 펼쳐준 이율 씨와 역시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성기윤 씨, 감정연출이 뛰어난 전나혜 씨, 개성넘치는 다역을 소화한 김호영 씨, 진수현 씨를 비롯한 전 출연진, 스텝들에게 나의 박수를 다시 한 번 보낸다.

 

Zoom in Quiz.^^*

고시방 505호 민수가 퀴즈회사에 들어가 입게되는 유니폼에 주목...그 숫자는?